소국(小國)은 요즈음 역적의 소탕으로 인한 대군(大軍)의 군량을 해를 이어 매호마다 거뒀고 더구나 왜국을 정벌하려 군함을 수리하고 만드노라 장정은 모두 그 일에 동원되고 노약자만이 농사에 종사하는데 이른 가뭄과 늦장마로 곡식이 여물지 않았으나 군사의 사용물자를 가난한 백성에게 거두고 심지어는 여분(餘分)까지 공급하여서 이미 초근목피까지 먹는 실정이라 백성들의 민폐가 이때처럼 심한 적이 없었고 더구나 일본동정(日本東征)에서 군사가 상하고 물에 빠져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 자가 많으므로 비록 남음이 있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 생활을 할 수가 없는데 만약 다시 일본에 파병(派兵)한다면 군함과 군량은 실로 우리 작은 나라가 능히 지탱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라는 이미 껍질만 남아서 존립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 하리요. 하늘의 눈길이 이에 이르지 않으니 어찌 이에 이른다고 말하리요. 바라건대 이 간절한 정성을 거두시고 이 슬픈 호소를 굽어 살펴 주소서. 고려사 世家篇